생태공원 남포마을 이야기

1 남당포구(남포마을)

  • 남포의 옛 지명은 성자포(星子浦) 또는 남당(南唐)이라고 한다.
  • 간척 이전에는 제주도, 추자도, 부산 , 군산 , 통영 등지에서 각종 배들이 고기를 싣고 남당포구까지 들어왔었다. 이 마을은 어류 유통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.
  • 이곳은 남쪽으로 배가 다니는 포구로 남해안으로 다니는 항로였다. 이곳에서 제주 배를 기다리던 선비들이 강진만의 정적인 잔잔한 바다를 보며 운치를 살려 남방(南方)의 당호(塘湖)라고 했을 정도로 ‘은은한 호수’라 불리던 곳이다.

2 정월 대보름과 남포

  • 매년 정월대보름 전야에 천제를 올린다. 100여개의 위패가 세워진다. 제사의 메인 무대는 제상에 차려진 천황상제이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더 많이 끄는 것은 남쪽에 차려진 작은 위패들이다. 이 위패는 바다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영령들을 위한 것이다.

3 4·4 독립만세 운동

  • 1919년 4월 4일 강진 장날을 이용 태극기를 세우고 독립만세운동을 본 마을 사람 5인(강주형·박학조·박영옥·차명진·정헌기)이 주도했다. 이를 기념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1992년 마을 내에 삼일운동기념탑이 세워졌다.
  • 기념비 건립 후 매년 추모제를 열어오다 2005년부터 범 군민행사로 재현행사를 이어오고 있다.

4 소설 한강 2권

  • 포구의 양쪽 갯벌을 따라 무성하게 펼쳐진 갈대밭이 3월의 바람결에 느리고 부드럽게 물결 짓고 있었다. 갯벌과 바닷물과 갈대가 어우러진 기나긴 포구의 풍광은 언제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.
  • 강진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 포구를 바라볼 수 있었고, 강진만의 색다른 정취는 그 포구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.

5 “애절양” 조선 후기에 정약용(丁若鏞)이 지은 한시.

  • 애절양(哀絶陽)은 다산선생이 백성의 처절한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시로 당시 군정의 문란함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.
    갈밭마을 젊은 아낙 길게길게 우는 소리
   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
    출정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해도
    사내가 제 양물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네
   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,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말랐는데
  • ‘갈밭마을 젊은 아낙 울음도 서러워라’의 갈밭마을이 바로 남포마을이다. 당시 횡행하던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가렴주구, 민초들의 어려운 삶을 다산이 직접 목격한 현장이 바로 남포마을인 것이다.

6 “남포 멸치젓

  • 남포의 멸젓은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. 남포는 70년대 초까지 추자도에서 배가 올라와 추자도에서 잡힌 멸을 직접 거래하던 곳이다.
  • 남포에 도착한 추자 멸젓은 이곳의 소금에 절여 일정기간 숙성돼 전국의 시장에 팔려나갔다. 그 후 추자도의 뱃길은 끊겼지만 9곳의 가정에서 경남 남해 등에서 멸을 공급받아 옛날의 숙성기술로 멸젓을 담아 판매하고 있다. 이러한 행위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해왔다.

7 (시) 갈대 - 신경림

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
조용히 울고 있었다.
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. 갈대는
그의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.

바람도 달빛도 아닌것.
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
까맣게 몰랐다.

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
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

그는 몰랐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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